entertainment and religion
6월입니다.
‘ 예수님이 칼 쓰기를 좋아하는 자는 칼로 망한다 ’고 하셨음에도, 당시에 방어차원과 경각심의 형성 정도로 허락하신 것이며, 그 정도 조차 불용하신 것으로 여길 수는 없지 않겠는가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칼과 방패가 서로 모순적이기는 해도 여전히 유효한 부분이 있는 가운데, 인생이 이런 모순의 반복이라고 해도 그다지 틀리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서로간에 자멸하는데 이르지 않기를 바랍니다. 어떠한 일에 대하여 준비가 안되었을 때 증가하는 부담은 사람의 스트레스 부담을 증가하게 할 수 있으며, 때로는 이를 감당하지 못하면 결국 그에 상응하는 반응이 일어나곤 합니다. 나이가 든다고 꼭 철이 들어야 한다는 것은 아님에도, 대체로 철이 들어간다고는 할 수 있습니다. 인류가 과학적으로는 수 십억, 수 백억 년, 인문학적으로는 수 천, 수 만년 정도로 지구의 나이, 논쟁 중입니다만, 를 평가하는 차이가 존재합니다만, 여하튼 그 오랜 기간이라는 것이 그렇게 와닿지 않고, 그것이 어쨌다는 것인가 라는 분도 계실 것 같습니다만, 그 기간이라는 것이 그다지 효과적으로, 인류에게 영향을 주는 어떤 부담에 대하여, 그것을 잘 감당할 능력을 이루지 못했음을, 때로는 살피게 합니다. 그로부터 몇 십 년이 증가한 이즈음, 지구와 인류의 나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폭의 증가가 높은 분야에 의해, 다스림의 영향을 잘 발휘하며 인류를 좋은 방향으로 나가게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라는 가능성을 살핍니다. 물론, 상상력으로 수 백억, 수 천억이라는 숫자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도 할 수 있음에, 이를 너무 가벼이 여기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과 함께, 때로는 그 모습이 장점이 되는 부분도 있을 것이라고 여기고 싶습니다., 엔터테인먼트의 가능성이 그래서 여전히 유효하며, 간접 체험이라는 그 장점으로 인해, 앞으로도 인류 평화에의 기여하는 정도가 계속 유지될 것이라는데 의심의 여지가 없지 않겠는가 생각해 봅니다. 그로 인해 그쪽으로 많은 관심과 부가 쏠리는 모습이 등장함도 타당하다고 여겨지면서도, 언제나 쏠림이 문제가 된다는 것임을 자각하고 나눔이라는 관점도 유지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한편, 이전의 들판으로 나가 뛰고, 땀 흘려가며 에너지 소모, 변환을 이루어내던 모습의 상당 부분이 실내와 컴퓨터, AR, VR 등의 기술에 의존하며 간접 경험으로의 이행이라는 편리성의 증대와 함께, 인간 내면에 쌓여가는 압력 부분의 해소에 있어서는 효과가 줄어들 수 있음에 우려가 되기도 합니다. 압력을 해소하는 좋은 방법론을 한가지 소개하자면, 그것은 기독교인이 되어 기도와 찬송을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스트레스 압력은 내면에 점차 쌓여 이를 해소하고자 입을 통해 계속 무언가를 넣으려 하지만, 알다시피 언젠가는 갈수록 해로운 상태에 이르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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